들어가며
화폐는 권력의 언어이자 통제의 도구이며, 때로는 그 권력에서 벗어나려는 저항의 수단이 된다. 한 국가의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법정화폐는 그 국가의 주권과 통치력이 물질화된 형태다. 그렇다면 그 질서가 무너졌을 때, 화폐가 약속한 가치가 하루아침에 증발했을 때, 개인은 어디로 향하는가.
흥미로운 것은 이 저항의 화폐가 하나의 형태로 수렴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들은 비트코인만이 진정한 주권 화폐라고 주장한다. 반면 개발도상국의 금융 소외 계층에게 비트코인의 극심한 가격 변동성은 감당하기 어려운 위험이다. 그들에게는 달러에 가치가 고정된 스테이블코인이 더 절실한 저항의 수단일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어떤 수단이 저항의 화폐로 기능하는지를 다섯 가지 기준으로 나눈다. 권력 저항성, 가치 안정성, 프라이버시, 접근성, 그리고 수용 공동체다. 그리고 권력이 화폐를 통해 개인을 옥죄는 방식을 거래 통제·가치 통제·감시 통제 세 축으로 정리한 뒤, 개인이 그 사이에서 확보하는 자율의 폭을 '제도적 거리'라는 틀로 다룬다.
사례는 이론보다 분명하다. 나이지리아 #EndSARS 시위대는 계좌가 막히자 비트코인으로 기부를 받았고, 캐나다 자유 호송대 시위에서는 자기수탁 지갑이 동결을 피했다. 하이퍼인플레이션 속 베네수엘라의 광산 마을에서는 금 조각이 일상 결제 수단이 되었고, 아르헨티나에서는 개인들이 스마트폰으로 스테이블코인을 사들이며 환전 규제를 우회했다. 같은 위협 앞에서도 선택된 도구는 매번 달랐다.
결국 앞으로를 가르는 것은 어떤 화폐가 이기느냐가 아니다. 권력이 거리를 좁히는 속도와 개인이 그 거리를 되넓히는 속도 가운데 어느 쪽이 앞서는가다. 저항의 화폐는 고정된 자산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새로 쓰이는 가능성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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